영화 이야기 (10) 썸네일형 리스트형 기생충 2019 (스포일러) 영화의 중반부, 쇼파 위 박 사장과 연교를 지켜보는 주체는 누구일까. 부부 자신? 잔디 밭 위 텐트 안에 있는 막내아들 다송? 그도 아니면 쇼파 맞은 편 테이블 아래 숨은 기택(과 자녀들)? 부부가 저질스럽게 여긴 일련의 소재들(팬티와 마약)이 더티 토크의 소재가 됐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 신에 숨겨진 풍자와 희화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신을 '지켜본 주체'로 영화가 설정한 것은 기택 가족, 정확하게는 기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영화 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아들 친구 진태의 집에 숨어든 어머니 혜자는 유력한 증거물로 보이는 골프채를 발견한 뒤 나가려다 진태와 그의 여자친구 미나가 들어오는 소리에 급하게 숨는다. 그리고 두 사.. 5월에 본 영화들 1.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 2013 영화를 볼 때 종종 가슴을 툭 하고 치는 찌르르한 순간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순간이 존재했는데, 그 장면들은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과 몸이 가져다주는 감흥들 덕분이었다. 영화의 전개상 굳이 주인공을 고르자면 전반부를 담당하는 라이언 고슬링보다는 전후반부 모두에 등장하는 브래들리 쿠퍼를 택하겠지만 이 영화의 전반적인 정념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킨 것은 8할이 고슬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아슬아슬하고 불안하고 투박한 감성을 온몸으로 승화해낸 고슬링의 열연 덕분에 다소 도식적으로 흘러가는 후반부 전개의 상투성에도 영화를 간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때로 어떤 영화들은 모든 대사와 음악도 필요없이 그저 배우의 뒷모습.. 킬링 디어 2017 , 란티모스가 설계한 비극의 게임 에서 아빠가 자녀들을 왜 집에 가두었는지 알 필요가 없듯, 에서 인물들이 짝을 찾지 못하면 왜 동물로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듯, 에서 마틴이 어떤 초월적 힘으로 스티븐 가족들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었는지 그 논리와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왜'를 묻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떻게'를 묻기 위해 초현실주의적인 설정을 활용하는 게임 설계자에 가깝다. 그 건조한 잔인함이 그의 영화에 대한 호와 불호를 극단적으로 나누게 만들지만 여하튼 그가 이 세상의 매순간을 죽을만큼 회의하고 있으며 그것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해보인다. 에서 첫째 딸이 기어코 탈출한 곳이 아빠의 트렁크였듯, 에서 호텔과.. 어느 가족 2018 이 영화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두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첫째는 영화 중반부, 바닷가에서 가족들이 행복하게 노는 것을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고마웠어'라고 말하는 하츠에 할머니의 모습이다. 두번째는 영화 후반부, 가족의 완전한 해체 후 오사무를 떠나 자신의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 쇼타가 입모양만으로 '아빠'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두 번의 발화는 모두 가족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말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장면을 가족 구성원을 대면하고 말하지 못한 뭉클하고 애틋한 마음을 조심스럽고 따듯하게 드러낸 영화적 서술법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결코 따듯한 가족애를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지점에서, 그리.. 공포분자 1986 소설 쓰는 여자는 엔딩 시퀀스에서 헛구역질을 한다. 구토 행위 자체보다 그 구역질 끝에 여자의 입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 허무한 헛구역질 이전에는 자살 시퀀스가, 그 자살 시퀀스 이전에는 (누군가의) 꿈이나 (여자의) 소설 장면으로 해석 가능한 소설 쓰는 여자 남편의 살인 시퀀스가 배치됐다. 꿈(혹은 소설, 하여튼 허구)-자살-헛구역질 시퀀스들이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공명하며 영화를 마무리짓는다. 이 영화의 허무함이라는 정념은 재현하고 싶은 욕망에 비해 결국 무엇도 제대로 재현하거나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증오스럽고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데서 기인한다. 소설을 쓰는 여자가 있다. 글을 쓰고 싶지만 아무 내용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떠오르는 내용이라곤 고작 '부부에 대한 이.. 자전거 탄 소년 2011 시릴(토마 도레)은 자주 무언가를 쫓아 올라가려고 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를 떠나 사라진 아버지(제레미 레니에)를 찾아 보육원 담장을 오르는 시릴의 모습, 자전거를 훔쳐간 동네 아이를 쫓아 나무 위를 오르는 모습, 아버지를 만나고자 그가 일하는 식당의 담벼락을 올라가는 모습은 그의 올라가려는 욕구를 반영한다. 그의 욕구는 빈번히 실패하고 그 결과로 그는 하강한다. 올라가려는 욕구와 하강이라는 현실은 상승-하강의 대립이라는 영화적 운동으로 작동한다. 핸드헬드의 흔들림과 롱 테이크의 물질적 속성 외에도 이런 대립은 영화에 생생한 긴장을 부여한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주인공의 움직임과 그것의 빈번한 실패는 영화 속에서 새삼스러운 장치가 아니다. 그러나 에서 그 대립이 아름다운 시네마토그래피로.. 아사코 2018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에서 도망쳐 나온 아사코(카라타 에리카)가 잠에서 깨 눈을 떠보니 그곳은 거대한 방파제 옆이다. 바쿠와 헤어져있던 8년간의 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고 말하는 아사코에게 바쿠가 함께하는 새벽의 바다는 그 자체로 몽환스럽고 경이로운 시공간이다. 료헤이 대신 바쿠를 선택했던 아사코가 '어떤 깨달음' 후 다시 료헤이를 선택한 뒤 바쿠는 그녀를 홀연히 떠나간다. 그 후 아사코의 선택은 몸집의 몇 배는 되는 거대한 방파제로 기어올라가 바다를 보는 것. 바다를 보는 아사코의 표정은 (그녀에게 닥친 상황들에 비해) 지나치게 무덤덤하다. 자연을 보는 두 번째 장면은 엔딩시퀀스에서 등장한다.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에게 돌아간 아사코는 끈질긴 노력과 숨찬 추격전 끝에 료헤.. 그린 북 2018 "키치는 감동의 눈물을 두 방울 흐르게 한다. 첫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저 아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모든 인류와 함께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번째 눈물에 의해서다." - 밀란 쿤데라 영화 은 키치다. 이 그려내는 세계는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그것을 함께 보고 있는 행위 자체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만드는 유토피아다. 여성이 주연이라고 여성영화라 할 수 없듯 흑인이 주연이라고 흑인영화라고 할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돈 셜리 박사(마허샬라 알리)의 캐릭터 설정인 '고독한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를 '고독한 천재 여성 피아니스트'로 바꾼다면 그 결과물은 여성들에게 장.. 이전 1 2 다음